박영선목사설교메모

일목16_신자된 자의 책임,기회,그 영광,기쁨,생명,넉넉한 은혜,기적을 살라

nazunzaro 2020. 5. 26. 06:05
복음의 핵심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의 일상생활이 가지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일하심에 대하여,
거기에 가장 중요한 단어가 고난과 환란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자랑으로 드러나지 않고, 명예로 드러나고 기쁨으로 드러나야 소원이 있고 늘 넉넉하고 기쁘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기쁨` 이라고 한다.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뭘 기뻐하라는 건가? 형통한 것이 아니라, 기적을 살고 있다는 것, 생명과 기쁨을 살고 있다는 것, 넉넉한 은혜를 나누는 기적의 삶이라는 것을 알라. 그렇게 바울이 우리를 권면하고 있다.

인내, 겸손, 헌신, 이런 단어들이 가지는 어떤 정열이나 정성이 아니고, 가치가 다른 것이다.

사랑은 처음부터 이렇게 터져나가는 폭발적인 것이 아니라, 참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오래 참고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라 가야 한다. 그런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우리가 겸손하게 사는 것은 겸손이 위대한 도덕적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듯이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이라는 걸 안 것만큼 지금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도 그 아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나도 그를 정죄하지 않고 적대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그에게 예의를 지키고 성실하게 대한다.

복음의 핵심이 뭔가? 왜 신자의 삶에 고난과 환란이 있는가? 그것이 뭘 만드는가?
우리의 조건과 환경을 불평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주를 섬기는 자리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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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핵심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의 일상생활이 가지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일하심에 대하여,
거기에 가장 중요한 단어가 고난과 환란이다.

우리가 믿게 된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세상에서는 무슨 일들이 가장 소중하고 명예로운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헌금을 크게, 예수를 믿는 기독교 세계에서의 의미로 소개한다는 거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프로젝트에 대한 인간적 동정심을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돈을 자신들이 가졌다는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도 아니고, 또 자신들이 후하게 헌금했다는 사실을 알려서 사회적 위신을 세우라고 독려하는 것도 아니다.
동정심 아니고 죄책감도 아니고 위신을 세우는 일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서 일어나는 은혜의 사역이다.
그러니까 이 `헌금을 한다` 이런 것은 꽤 긴 세월의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깝기도 하고 그리고 내심 보상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같이 자식이 괜찮다 해도 좋은 옷 입히고 싶은 것같이, 예수를 믿는 세상에서는 이것은 은혜, 왜 은혜라는 말을 쓰느냐 하면, 세상에서는 이해관계를 떠나는 거래는 없기 때문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의미에서 은혜라고 소개한다
이런 은혜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걸 알지 못하면, 그리고 이런 세계에 들어온 삶을 살지 못하면, 그것은 커다란 일에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바로 옆에 있는 가족 앞에서, 믿음의 공동체 앞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잘못되면 예수 믿는 보람, 예수 믿는 명예, 예수 믿는 자랑이 없어지죠. 그러면 예수 믿는 게 고단해진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자랑으로 드러나지 않고, 명예로 드러나고 기쁨으로 드러나야 소원이 있다. 그리고 늘 넉넉하고 기쁘다.
그 일에 우리가 동참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크신 일, 지금 하고 계신 일, 그 일에 구체적인 손길과 기적으로서 내가 서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사람들, 무슨 빌리 그래함이나 무슨 테레사나, 이렇게 위대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예수께서 오실 때에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같이 그래서 그 구유가 기적이라는 거다. 왜? 그 안에 예수가 누워있으니까.
그렇게 우리의 삶에 말구유 같은, 외양간 같은 우리 집에 주께서 오시고 우리 삶을 함께 하시고 함께 손잡고 가시자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서 넉넉할 틈이 없다.
나눌 틈이 없다. 기뻐할 틈이 없고 웃을 틈이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기쁨` 이라고 한다.
고린도후서 7장에서 `왜 우리는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빌립보서 4장 4절을 들었다;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뭘 기뻐하라는 건가? 형통한 것이 아니라, 기적을 살고 있다는 것, 생명과 기쁨을 살고 있다는 것, 넉넉한 은혜를 나누는 기적의 삶이라는 것을 알라. 그렇게 바울이 우리를 권면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에 들여보냈다, 새로운 나라에 들여보냈다, 새로운 인생이 되게 했다, 세상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가치 있게 쓰임 받는 윤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내, 겸손, 헌신, 이런 단어들이 가지는 어떤 정열이나 정성이 아니고, 가치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이 새로 만드시는 나라. 하나님을 아는 나라. 하나님의 자녀라 되는 나라. 생명과 성령이 죄와 사망을 이기는 나라.
어떻게 이기나? 사랑이 그러지 않았는가?
●사랑은 처음부터 이렇게 터져나가는 폭발적인 것이 아니라, 참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오래 참고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라 가야 한다. 그런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런데 우리는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만 믿고, 살아서 할 수 있는 것을 안하고 있다.
해야 하는 것을 해야 된다.

헌금의 가치는 '돈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먹여 살리며, 돈이 만들 수 없는 영광을 하나님만이 만드신다, 이 세상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 앞에 바쳐 무릎 꿇리었다. 그리하여 돈으로 결과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가장 중요한 영광과 결론을 만드신다는 것을 인정하여 기꺼이 우리가 세상에서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주 앞에 무릎 꿇린다.` 이렇게 바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뭐냐?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거기에 담아 주 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 헌금이다.

●☆우리가 겸손하게 사는 것은 겸손이 위대한 도덕적 행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듯이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귀한 사람이라는 걸 안 것만큼 지금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그를 위해서도 그 아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나도 그를 정죄하지 않고 적대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그에게 예의를 지키고 성실하게 대한다.

7, 8, 9장에서 나타나는 고린도후서 전체에서 복음의 핵심이 뭔가? 왜 신자의 삶에 고난과 환란이 있는가? 그것이 뭘 만드는가? 하는 것 속에서 헌금이란 특별한 이 구제 혹은 헌신이 어떤 세계를 어떤 배경을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우리의 조건과 환경을 불평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주를 섬기는 자리로 데려간다.

사도바울이 그 대사도가 아무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수모를 기꺼이 감수하듯이,
`그렇다. 너희는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은혜를 받지 않고는 오해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그 수모를 감수하고 저들에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감수하고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정죄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끌어안고 거기다가 당신의 부활을 담으시듯이, 우리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꿈꾸듯이 욕심내듯이 자랑하듯이 상상과 꿈속에 머물지 않고, 자기의 인생을 살도록 현장으로 데려오는 말씀이라는 걸 기억해야 된다.

●우리의 일상.이 어떤 조건 속에 있고 어떤 규모에 있고 어떤 어려움 속에 있는지 다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거기에 보내진 하나님의 종이다.
우리는 승리해야 된다. 그 승리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되는, 확인 해야 되는 신자된 우리 것이며, 책임이며, 기회며, 영광이 될 것이다.

*(기도)
우리가 넉넉한 사람들이라는 것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다 기적의 조건이다. 오병이어가 그랬듯이 말이다.
주무시는 예수님을 함께 배에 모시고 가는 제자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야 맞는 것처럼 말이다.
어찌 세상이 주를 삼킬 수 있단 말인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 믿음을 우리에게 보이셨고 만드셨고 살게 하셨으니 순종하여 이기는 그날까지 주만 바라 보아야 한다.
우리를 보내신 이 나라와 이 사회와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 영광 받아 주소서. 감당할 믿음과 위로도 주소서.

(*일병목회강좌-고후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