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목사설교메모

일목12_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시간 속에서 완성되어 간다. 우리의 원망,분노,울음,고단함이 하나님의 지혜,방법,붙드심,인도하심이다

nazunzaro 2020. 5. 25. 05:39
고린도후서 16장 여기 짧게 16절에서 18절까지 있는 내용에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는 것은 레위기 26장 말씀, 출애굽기 29장 45절 말씀, 예레미야 37장 24절 이하의 말씀이 여기 같이 나온다. 여기 말하는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하나님께서 저 멀리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심판하시는 구경 하시고 점수 매기시는 심사위원이 아니라,
우리 중에 함께 거하여 함께 사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잘하면 보상을 받고 못하면 벌을 주고가 아니라, 우리 중에 거하시겠다 하는 말이다》

예레미야는 우리 모두가 읽는데 긴장감을 가지는 곳인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예레미야가 만만치 않는 장(페이지) 수를 갖고 있는데, 대부분 다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꾸짖는 하나님의 분노를 내시는 말씀들로 차있어서 우리는 겁을 낸다.
그렇게 화를 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을 기어코 이루시겠다는 뜻이지, 잘못한 것들은 벌 받아 죽어라 그러는 사형선고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이 죽자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나뉜다. 북왕국은 선한 왕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때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왕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잘잘못이라는 이분법의 그 폐해는 이것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저 사람은 정직해`라고 얘기하면 그런 표현들은 일종의 명분이다. 맞는 얘긴데, 명분의 약점은 정황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옳은 말을 하는 것은 언제나 그 방향으로써, 명분으로써 옳은 것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옳은 것을, 누구를 비난하거나 자신을 판단하는데 쓰는 것 정도를 지나서, 오늘을 사는 데에 정직함을 적용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은 문제가, ●《정직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있어야 된다》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실력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사실은 잘 모는다. 그것은 물론 지혜로워야 한다. 그런데 《모든 지혜는 경험이 없이 나오면 다만 설교가 된다.》
이때 말하는 설교는 약간 그 비난조로 세상에서 하는 말이다.

성경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 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시려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결국 처음의 약속 그것을 지켜내시겠다는 것인데, 왜 그 약속이 반복적으로 실패와 회복을 반복해야 되는가?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 선조가 있고 후손이 있는 법인데, 앞에 일어났던 일들이 후손들에게 어떤 유익한 유산이, 유익한 기억이 되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성경이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출애굽 때 일어나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그때 그 사람들에게도 명분을 잣대로 쓰고 지금 우리도 잣대를 쓴다 그렇게 얘기하려면 역사가 필요 없다.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앞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반복이 되면서 그 실패의 반복과 회복의 반복이 가지는 의지, 과정에 의해서 이해가 생긴다는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이 간단한 신앙고백을 받아내신 후에도, 우리는 예수 믿는 게 믿는 것 같지 않는 세월을 보낸다. 그게 왜 필요하냐는 거다. `하나님, 40일 금식기도하라면 40일 금식기도를 하겠습니다. 40일 철야를 하라면 하겠습니다` 그건 단판에 끝내자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너희가 지금 나이에 겪어야 할 것이 있다` 그러신다.

우리가 이상과 정열에 휩싸였을 때가 있고, 그리고 어떤 필요, 그리고 체념에 붙잡히는 그 모든 것이 일을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성경이 하고 싶은 말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역사를 따라서 약속을 바꾼다. 약속을 더 진하게, 처음에 아담에게는 `너 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마라 저걸 먹으면 너 죽는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담의 후손을 다 멸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음을 도입하여 이제부터 범죄한 인류에게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을 시작을 한다. 그걸 긴 시간에 걸쳐서 아브라함에게서 부르심을, 이삭에게서 유업을, 야곱에게서 기회를, 우린 본다.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여러 경우와 과정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내용을 만들어 내는지를 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는 것까지 다 합쳐서.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소서`가 나오는 그런 텍스트가 콘텍스트에 담겨있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고, 우리의 부활도 육체가 없어지고 영혼만 남는 것이 아니라 부활한 육체가 주어지듯이,
우리의 몸과 우리의 실력으로, 우리가 만나는 현실 속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도전받고 애쓰고, 그리고 만족하는 때는 드물고, 후회하고 원망하는 모든 것들을 갖고 하나님이 일을 한다고 얘기한다.

그게 왜 여기에 등장해야 하느냐?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이르는 거다;
`너희가 당연히 예수를 믿으면 늘 만족하고 완벽한 결론에 이르는 것에 아니라, 이게 뭔가 싶은 것이 정상이다`그렇게 얘기하는 거다.

`나를 봐라. 내가 당하는 환란이 너희에게 곧 위로가 될 것이다. 왜? 너희도 예수를 믿어서 이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면제받는 자리로, 이렇게 도피처로 데려감을 당하지 않고,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당해야 된다. 너희의 못난 것도 봐야 되고 실력 없는 것도 봐야 되고, 하나님이 왜 일을 이렇게 하시는가 원망과 의심이 들기도 할 것이다, 너희는 체념할 수도 있고 반발할 수도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셈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것이 없는 신앙은 거짓말이다 이거다.

'아니 은혜로 구원을 얻어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예수 안에서 해 주신 다면 우리가 뭣 때문에 열심히 살아?` 이 질문이 나와야 된다.
이 질문은 그러니까, 이걸 이미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왜 이렇게 힘들어`다.
`왜 이렇게 힘들어? 예수를 믿고 났는데도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 하는 발버둥질을 왜 해야 돼?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편안해야 맞지 않아? 뭣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돼?`라는 질문이 나와야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시간 속에서 완성되어 간다는 걸 잊지 말아야 된다.
늘 사람들이 묻는다; `그러면 믿어 봤자, 끝장을 봐야 된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를 고백한 이상 우리의 운명과 신분의 실패는 없다.
●그러나 그 구원은 성경이 얘기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익어가고 완성되고 커진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치심이다.
하나님이 구원역사를 세상 역사,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고 계시고, 우리들의 입술을 통하여 증언을 받으시고, 찬송을 받으시는 방법으로 일하신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많은 일들, 실패와 부끄러움과 그리고 후회와 눈물의 것들이 우리를 만든다고 성경이 얘기함으로써,
우리로 우리의 현실을 현실적으로 살아내라는 도전 앞에 잡혀있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옳은 말만 하고 특별한 종교적 행사나 종교적 임무에 신앙행위를 붙들어 매고, 나머지는 타협하고 사는, 이상한 이중적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 둘을 한꺼번에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분명하게 기억해서, 하루만큼 자라나시는 귀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인생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일하고 계신다.
바울은 주께 세 번이나 주께 간구했다. 사단의 사자를 해결해 달라고. 주께서는 '더 이상 이 문제로 기도하지 마라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원망하고 분노하고 울어대는 우리의 오늘의 고단함이 하나님의 지혜고 방법이고 하나님의 붙드심이요 인도하심이다,라는 걸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설 자리가 없다.
●그 눈물을 그 후회를 하나님 앞에 붙들어 매는 믿음의 순종과 인내와 실제적인 충성이 있어야 한다.

*일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