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지는 않으신다.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의 최우선 기도 제목은 고난과 어려움을 면제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간구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한다며 핑계 하기도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답을 주지 않으시는지 어떻게 하면 답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며 매달리다가 결국 체념에 빠지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이 성경에 가득한데도 우리 눈에는 잘 안 들어온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은 저 구석에 있어도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성경이 강조하는 진지한 요구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교회사 내내 그렇게 외면되어 왔다. 사람들은 대개 고통을 면하고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종교를 찾는다. 사람 안에 있는 기본적인 종교성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셔서 우리에게 복주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운 소원은 그대로 굳어져서 더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고 싶은 작은 소원에 머물러 <기독교 신앙의 더 깊은 경지>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 그의 영광의 찬송 이라는 약속>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 타협하지 않으신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신자인 우리 인생은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 될 수도, 그런 가치에 따라 보상받거나 증명될 수도 없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자로서의 존재와 운명을 가진 자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와 소망 아래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인생에 대한 명예를 가지게 되었다. 유능과 무능, 성공과 실패, 자랑과 오해를 넘어선 명예 말이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남겨놓은 역사적 증언이다.
이것이 신자의 현실을 말해주는 진리라면 <사도 바울이 걸었던 그 길이 우리 현실과 인생에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이 부분이 어느 시대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걸려 넘어진 지점이다.
<예수를 믿는 진정한 가치와 명예>를 몰라 쩔쩔매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던 지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이 갖는 힘과 위대함>을 붙들어야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이 갖는 용기와 담대함과 기적을 누리는 복된 존재와 인생>이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2_05 세상의 것으로는 증명하지 못한다)